천지창조의 도를 말하다
天地之道는 可一言而盡也-니 其爲物이 不貳라 則其生物은 不測이라.
*(原本註釋) 言天地之道는 誠一不貳也-라 又曰不貳는 所以誠也-라 不器曰 何謂不測者也-리오. 但難測者而己矣니라. 又曰愚者之誠은 不如無乎인저.
이 글은 중용(中庸)의 한 부분이다. 흔히 중용(中庸)을 소주역(小周易)이라고 부른다. 위의 글을 보면 주역을 왜 소주역이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도를 단 한 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도(道)라고 하는 것은 과정이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 주는 이정표다. 내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가? 그 바른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도인 것이다.

명확하게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도인 것이다. 도는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가야 할 길은 얼마나 멀고 앞길은 어떠할 것인가 모든 만물의 가는 길이 어디인가를 아는 것이 도이다.
하늘과 땅의 도는 한 마디로 완벽하게 말할 수 있으니 그것은 둘이 아닌 것이다. 그 물건이 둘이 아닌 것에 있다.
대학은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가 편찬한 것이다. 증자는 공자의 수제자이다. 그런데 둘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 둘이 아닌 것은 왜 생겼는지 어디서 생겼는지 도저히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공자도 천지의 도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불이(不貳) 곧 둘이 아닌 것이 대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나는 중용(中庸)에 있는 이 글을 읽고 천지의 도를 모두 확연하게 깨달았다. 다 알고 난 뒤에 주석을 붙이기를 왜 감히 알지 못하겠다고 하였으며 어찌하여 측량하지 못하겠다고 하였는가?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헤아리기 어려울 뿐이라고 하였다.

천지의 도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뿐이지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오직 정성 하나로 알려고 노력하면 알 수 있다고 하였는데 나는 어찌 정성만으로 알 수 있겠는가? 나는 어리석은 사람의 정성은 차라리 없는 것만도 못한 것이라고 하였다.
모든 만물이 불이(不貳)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불이(不貳)는 무엇인가? 내가 어디서 나왔는지 그 내 정체를 알 수 없으면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우리나라 말을 모르면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아볼 수도 없다. 갈 줄도 돌아올 줄도 가는 길도 오는 길도 모르게 된다.
사람이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를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하는 모든 일은 사상누각(沙上樓閣)과 같다. 내 뿌리를 알지 못하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아서 무엇이든지 허물어져 버린다.
사람들한테 사람이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면 삼신할미가 점지하여 주었다고 한다. 또는 절간에 가서 자손을 점지하여 달라고 부처님한테 빌어서 났다고 한다. 무당이 굿을 해서 났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느 산의 정기를 받아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무엇이든지 정체성을 알아야 그 쓰임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종이를 종이인 줄 알고 펜을 펜 인줄 알아야 쓰임새를 알 수 있다. 물건의 성격을 제대로 알아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옛날에 수표(手票)가 처음 나왔을 때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수표를 한 장 주웠다. 그런데 그 쓰임새와 가치를 알 수 없었으므로 코를 푸는데 썼다고 한다. 그는 수표로 코를 풀면서 무슨 종이가 이렇게 뻣뻣하냐 하고 불평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물건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면 수표를 뒷간에서 밑을 닦는데 쓰고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대학(大學)에 나오는 글은 공자(孔子)가 지은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구전(口傳)으로 전해 오던 글을 그대로 수록한 것이다. 공자는 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공자는 겉만 전했을 뿐이고 속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우편배달부가 편지만 전달하면 되는 것이지 안의 내용을 다 알 수는 없는 것이고 알아서도 안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편지를 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편지를 영영 받을 수 없으므로 공자는 자신이 해야 할 몫을 훌륭하게 다한 것이다.
하늘과 땅의 도는 한 마디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으니 둘이 아닌 것이 하늘과 땅이 되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을 태어나게 된 것이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태산을 쌓을 때 흙 한 삼태기가 모자랐고 태평양을 만들 때 물 한 바가지가 모자라서 만들지 못하였겠는가?

이 세상에 둘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 겉과 안으로 나눌 수 없고 안과 밖으로 나눌 수도 없으며 전후좌우앞뒤를 나누거나 구분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모든 물건은 전후좌우와 안과 밖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7로 이루어진 것이다. 껍질 곧 생명이 없는 것은 모두 6이고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7이다. 알맹이가 있는 것은 모두 7이다. 숫자 하나가 부족한 것은 껍질이고 다 쭉정이다.
둘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 기생물(其生物)은 불측(不測)이라. 내가 한 시간 동안 생각한 뒤에 말하기를 불측이 아니라 난측(難測)일 뿐이라고 하였다.
둘이 아닌 것에서 만물이 생겨났다. 성경의 창세기에서는 혼돈에서 만물을 창조했다고 한다. 혼돈(混沌)의 혼(混)은 흐릴 혼(混)이다.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 세숫대야에 흙을 한 주먹 넣고 휘저으면 혼탁해져서 흙도 물도 아닌 것이 된다. 이것이 혼돈이다. 그런데 한참 그대로 두면 경청(輕淸)한 것은 위로 떠오르고 중탁(重濁)한 것은 아래로 가라앉아서 둘로 나누어진다. 그러므로 혼돈에서 만물을 창조한 것은 아닌 것이다.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곧 어둠이다. 깜깜한 방 안이거나 토굴 속에 들어가 있으면 주변이 모두 깜깜하여 이 어둠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머리가 어디이고 꼬리가 어디인지 시작이 어디이고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눈을 감으면 당장 어둠의 두께가 한 치인지 만 리 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시작도 끝도 머리도 꼬리도 알 수 없는 것이 어둠이다. 어둠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므로 치울 수도 없고 퍼낼 수도 없다. 경문(經文)을 읽어서 귀신을 쫓듯이 쫓아서 내보낼 수도 없고 회초리로 때려서 내쫓을 수도 없는 것이다. 삼태기로 담아서 퍼낼 수도 없고 바람으로 날려서 보낼 수도 없다. 오고 가게 할 수도 없는 것이 어둠이다.
빛은 오는 곳도 있고 가는 곳도 있다. 빛은 확연(確然)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빛은 유소유방(有所有方)이다.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해가 진다. 달도 별도 빛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분명하고 확실하다. 방향과 장소가 분명한 것이 빛이다.
빛은 속도가 있다. 빛의 속도는 초속 28만 킬로미터이다. 그래서 태양빛이 지구에까지 오는데 7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어둠이 찾아오는 속도는 얼마나 되는가? 전등불을 끄면 즉시 주변이 깜깜해진다. 어둠이 찾아오는 빛보다 두 배는 더 빠를 것이다. 어둠은 1초에 60만 킬로미터는 갈 수 있을 것이다. 불을 끄면 즉시 어둠이 사방에서 모여드는데 너무 빨라서 어떤 눈으로도 잡을 수 없고 어떤 사진기로도 찍을 수 없다.
방안에 앉아서 불을 끄면 봉창으로 빛이 들어오므로 빛이 오는 곳을 알 수 있는데 어둠이 오는 곳은 대체 알 수가 없다. 빛은 오고 가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불을 끄고 어둠 속에 앉아서 아무리 살펴보아도 어둠이 어디서 생겨나서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늘에서 내려오는지 땅에서 솟아오르는지 알 수가 없다.

납을 1미터 두께로 하여 사방에 벽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있으면 어떤 물질이든지 파장이든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엑스선도 통과할 수 없고 감마선도 통과할 수 없다. 어떤 물질의 입자도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속에도 어둠은 꽉 차 있으며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있는 것이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는데 쌓이고 쌓여도 두께도 무게도 깊이도 폭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어둠은 눈으로 보면 어두운 것이고 감각으로 느끼기에는 차가운 것이다. 곧 어둠이 추위이고 추위가 어둠인 것이다.
어둠과 추이가 불이(不貳)다. 춥고 어두운 것이 둘이 아닌 것이다. 음(陰)과 냉(冷)은 둘이 아니다. 음(陰)은 눈으로 보는 것이고 냉(冷)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어둠은 장소가 없다. 해가 지고 나면 지구의 온도가 하루 저녁에 10도가 내려간다. 빛이 없으면 순식간에 추위가 다가오는 것이다.
빛이 멀리 가면 어둡고 추워진다. 수증기가 별로 없어서 온도를 저장하지 못하는 사막 같은 곳에서는 낮에 해가 있을 때에는 온도가 섭씨 40도까지 올라갔다가 한 밤중에는 영하로 떨어진다. 하룻저녁 사이에 40도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어둠과 함께 냉이 온다. 냉(冷)과 암(暗)은 둘이 아니다. 어둠은 이분법(二分法)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어둠은 겉과 속이 없다. 다만 모여드는 성질이 있으며 추운 것이다. 추위와 어둠은 둘이 아니다.
어둠과 추위는 모여드는 것이다. 곧 응축(凝縮)하고 수축하는 것이다. 팻트병에 물을 담고 냉동실에 넣어두면 냉동고 안에 마치 도깨비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와자작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열어 보면 팻트병이 산산조각이 나 있다. 팻트병이 추위로 인해 수축되어서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얼면서 수축하는 강도가 높아져서 구조가 깨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얼음이 강하게 얼면 와자작 하고 깨어져 버리지 않는가. 히말라야 산에서 갑자기 영하 100도나 되는 찬 공기가 갑자기 다가오면 나무나 바위, 텐트 이런 것들이 순식간에 와자작 부서져서 가루가 되어 버린다.
누에를 영하 200도로 얼리면 물질구조가 깨어져서 가루가 되어 버린다. 순식간에 영하 섭씨 200도로 온도를 낮추는 냉동건조분말기기가 어느 대학교 연구소에 있다. 그런데 갑자기 온도를 영하 섭씨 200도로 낮추려면 전기요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서 만드는 제품은 값이 모두 매우 비싸다.
추위는 모든 물질에 있는 공간을 없애서 물질의 입자 사이의 간격을 잡아당겨서 오므라들게 한다. 추위와 어둠은 모든 것을 수축하게 하는 힘이 있다. 중심으로 끌어당겨서 응축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이 응축의 힘이 극한에 달하면 수소가 만들어진다. 수소와 어둠이 극한에 이르면 산소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수소와 산소가 우주의 기본물질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질소와 탄소, 물 같은 것이 만들어져서 생명이 생길 수 있는 원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곧 어둠과 추위로 인해서 극한으로 응축이 되면 수소가 생성되고 수소가 극한으로 응축되면 산소가 생성되고 수소와 산소가 어둠과 추위로 인해 응축되면 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생명의 시작은 물에서부터 비롯된다. 호르몬도 물이고 체액도 물이다. 생명은 물에서 태어났다. 사람도 태중(胎中)에 자궁에 있는 물속에서 자라면서 피부와 탯줄을 통해서 호흡을 하다가 태어나자마자 코로 호흡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태아는 태 안에서는 한 번도 코로 숨을 쉬지 않는다. 물고기가 물에 살면서도 코로 숨을 쉬지 않는 것과 같다.
산소와 산소가 합쳐서 질소가 생기고 산소가 탄 재가 탄소로 만들어지고 산소, 탄소, 수소, 물 이런 것들이 계속 생겨나서 우주가 형성된 것이다. 지금도 원소는 계속 생겨나고 있다. 산소와 수소가 합쳐져서 탄소 질소를 만들 듯 계속해서 새로운 원소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질들이 서로 결합하려면 우주 공간에서 강제적인 힘으로 가두어야 한다. 이를테면 블랙홀 같은 것이 필요하다. 태양 주변에 있는 혹성들이 한데 합쳐지면서 초신성(超新星)이 폭발할 때 생기는 빛은 태양보다 5억 배가 더 밝다고 한다.
초신성이 폭발하고 나서 열기가 다 식으면 블랙홀이 된다. 중성자(中性子) 별이 되는 것이다. 불이 타지 않는 별 곧 원자를 잃은 별이 되는 것이다. 중성자(中性子) 별은 인력과 무게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나 표면적이 엄청나게 줄어들게 된다. 곧 중력이 가운데 중심부로 하나의 초점(焦點)으로 모이게 된다.
곧 지구의 무게가 바늘 끝 같은 한 곳으로 축소되게 된다. 중심부로 엄청난 힘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태양이 야구 공 만하게 줄어든다. 지구는 태양이 없어지면 도토리 알 만하게 줄어든다.
그 압축하는 힘이 얼마나 되는가? 추위와 어둠은 엄청난 가속력(加速力)으로 응축하는 성질이 있다. 태양이 없어지면 지구는 하룻저녁에 기온이 섭씨 30도가 내려가고 그 다음날에는 섭씨 3천도가 내려가고 계속 가속도가 붙어서 지구가 땅콩 알맹이만한 크기로 축소된다.
어둠은 촉감이 없다. 그러나 빛은 촉감이 있다. 어둠은 촉광이 없다. 어둠도 촉수(觸手)는 있지만 느끼지 못하고 기록할 수 없는 것이다. 어둠의 촉수는 느끼지 못한다. 우주에서 빛 속에 갇혀 있는 공간에서는 빛이 도달하는 그 이하로는 온도가 내려가지 않는다. 그 온도가 절대온도이다. 절대온도는 섭씨 영하 273도다.

블랙홀은 빛의 무덤이다. 우주의 반대쪽은 빛이 전혀 없는 공간이다. 빛이 전혀 없는 곳에 어둠이 모여든다. 음한(陰寒)이 수축의 극에 달하면 극즉반(極則反)이 되어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물이 극에 달하면 수소와 산소로 나뉘게 되고 수소와 산소가 극에 달하면 물이 되는 것이다.
수축이 극에 달하면 대폭발을 일으킨다. 그래서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생겼다. 주역(周易)에 무형(無形)이 생유형(生有形)하고 하는 구절이 있다.
옛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유교(儒敎)와 도교(道敎)와 불교(佛敎)가 서로 부딪힌다. 유교와 불교와 도교가 서로 제 것이 옳다고 여기고 서로가 서로를 비방한다.
그러나 나는 도를 스승으로 삼고 사람의 말을 스승으로 삼지 않는다. 나는 목사와 신부와 승려들이 하는 말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곡신(谷神)은 죽지 않는다. 곧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러서 현묘(玄妙)한 암컷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어둠 속에서 만물이 태어났다는 말이다.
곡신불사(谷神不死)라는 말은 노자가 처음 한 말이 아니다. 본래 6천 년 전에 살았던 황제(黃帝)가 한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자는 황제의 방계(傍系) 제자이다. 노자가 황제의 천서편(天瑞篇)에 있는 글을 인용해서 표현한 것이다. 천서편에 나오는 열자(列子)의 스승 호자(壺子)는 황제보다 2,000년 뒤에 살았던 사람으로 황제의 제자의 제자이다.
황제가 말하기를 곡신(谷神)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러 현묘한 도이며 검은 암컷이라 하였고 검은 암컷의 문에서 태어난 것이 하늘과 땅의 근본이고 뿌리라고 한 것이다. 어둠은 면면약존(綿綿若存)이라 면면이 존재하여 끊어지지 않고 용지불근(用之不勤)이라 부지런을 떨지도 않는 것이다.
물건을 낳는 자는 낳지 않고 변하게 하는 자는 변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물건을 낳는 자는 낳는 것이 아니며, 낳는 자는 항상 낳고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낳는 자는 항상 낳고 변하게 하는 자는 변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고로 항상 낳고 항상 변화하여 상생상화(常生常化)하는 것이므로 어느 때든지 낳고 변화한다. 그것이 음양(陰陽)이고 사시(四時)이다. 낳지 않는 자는 의독(疑獨)이고 응독(凝獨)한다. 엉길 응(凝) 자에 홀로 독(獨)자이다.

壺子云호되 有生不生하고 有化不化라 不生者는 能生生하고 不化者는 能化化라. 고로 常生常化하나니 常生常化者는 無時不生하고 無時不化라 陰陽爾오 四時爾라 不生者는 疑獨(凝獨)하고 不化者는 往復이라. 往復其際는 不可終이오 疑獨(凝獨)其道는 不可窮이로다.
黃帝書에 曰- 谷神은 不死하나니 是謂玄牝이라 하시고 玄牝之門이 是謂天地之門이니 綿綿若存하야 用之不勤이라. 故로 生物者는 不生하고 化物者는 不化하나니 自生하고 自化하며 自形하고 自色하며 自智하고 自力하며 自消하고 自息이어늘 謂之-生커니 化커니 形커니 色커니 智커니 力커니 消커니 息커니는 非也라.
추위와 어둠이 엉켜서 안으로 수축하여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절대 온도와 절대압력에 다다르면 곧 수축의 끝 곧 극에 이르면 대폭발 곧 빅뱅이 일어난다. 무엇이든지 응축(凝縮)하고 응결(凝結)하여 모이려면 빙글빙글 돌아야 한다. 수세식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나서 물을 내리면 물이 빙글빙글 돌면서 좁은 구멍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깔때기에 물을 부으면 좁은 구멍으로 물이 통과하기 위해서 물이 빙글빙글 돌면서 안쪽으로 모인다. 강물이 좁은 골짜기로 흘러가려면 소용돌이치며 흘러내린다. 태풍도 거대한 회오리 모양으로 기류가 중심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이 큰 움직임의 가운데 부분 곧 기의 흐름의 중심부분이 곧 태풍의 눈이다. 태풍의 눈은 기의 중심체다. 태풍의 눈은 고요하고 맑다. 구름은 물질이다. 기운이 변해서 정신이 되고 정신이 곧 생명이 된다.
우주는 순수한 어둠과 추위가 모여서 응축하였다가 곧 수축하였다가 빅뱅이라고 하는 대폭발을 일으켜서 생겨났다. 그 어둠이 모여서 빅뱅이라고 부르는 대폭발을 일으킬 때에 그 회전하는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던 것이 사람이 되었다. 모든 사람은 그 음한이 소용돌이쳐서 대 폭발을 일으킬 때 우연히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던 것 때문에 생겨났다. 그 밖에 모든 우주와 천체 만물은 그 가장자리 부분에 있었던 것들이다.
태풍의 눈은 고요하고 맑으나 기운 곧 힘 에너지로 충만하여 있다. 어둠과 추위의 중심부분 곧 회오리의 중심부분은 태극(太極)모양을 이룬다. 움직임의 극은 태극(太極)모양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회전하는 나선 모양이 태극이다.
그래서 하늘의 은하(銀河)를 살펴보면 소용돌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많다. 소용돌이의 중심이 원중지원(圓中之圓)이다. 회오리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 사람이 되었다. 으뜸 중의 으뜸에 있었던 것이 사람이 된 것이다.

회오리바람이나 태풍을 살펴보면 제일 한가운데 중심부는 항상 비어 있다. 태풍의 눈에서는 맑은 하늘이 그대로 들어난다. 바람 한 점도 없다. 그 주변 곧 가장자리로 갈수록 구름이 많아진다. 탈수기를 회전시키면 가운데 부분은 진공과 다름없게 된다. 가운데로 에너지가 모이고 물질은 바깥쪽으로 튕겨져 나가기 때문이다.
태풍의 눈은 회전 운동의 축이다. 문을 열고 닫을 때 돌쩌귀와 같다. 문은 움직이지만 돌쩌귀는 움직이지 않는다. 자동차 바퀴의 바깥쪽으로 갈수록 빨리 돌지만 가운데 축은 움직이지 않는다. 달구지 바퀴의 중심의 중심 곧 원중지원(圓中之圓)은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소용돌이가 회전하면서 맑은 것과 흐린 것,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으로 나누어진다. 물질과 비물질이 나누어지면서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만유(萬維)가 생겨났다. 그 회오리의 중심부위에 있었던 것이 생명이 되었다.
원의 가장 중심에 있던 것이 사람이고 그 다음이 동물들이며 그 다음이 식물 곧 풀과 나무들이고 네 번째에 있던 것이 빛 곧 태양이고 다섯 번째 가장자리 바깥쪽에 있는 것들이 행성들이다. 이 중에서 지구가 가장 서열(序列)이 낮다. 회오리의 가장 바깥쪽에 있던 물질들이 모여서 지구가 되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는 다음과 같이 한탄하였다. 오호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천지만물 중에서의 가장 높은 그 꼭짓점에 서 있다. 내 밑에 동물과 식물이 있고 그 아래 태양이 있으며 땅은 그 한참 아래에 있다. 태양은 내 증손자(曾孫子)가 되고 땅은 현손자(玄孫子)쯤 되며 땅에 있는 다른 물질들은 그 손자의 손자가 되는 존재들이 아닌가. 동물은 내 자식들과 같고 식물은 내 손자와 같지 아니한가?

빛은 증손자이고 달은 고손자(高孫子)이고 땅은 현손자(玄孫子)와 같으니 내가 답답하고 막막하다면 나는 어디에 빌고 어디에 구원을 부탁해야 할 것인가? 답답하고 서러운 일이 생기면 나는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 하는가? 손자인 하늘에 빌 것인가 현손자인 땅에 빌 것인가?
까마귀는 어미가 병이 나면 먹이를 물고 와서 토해 내어 어미의 입에 넣어 준다고 한다. 그래서 까마귀를 효성이 지극한 새라고 하여 반포효조(反哺孝鳥)라고 부른다. 오호(烏呼)라. 나는 어디에 빌 것인가. 빌어야 할 데가 이 세상에 없구나. 오호는 까마귀 오(烏)에 부르짖을 호(呼)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것한테도 빌면 안 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윤리도덕을 지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부모한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산에 가서 바위한테 절을 할 것인가? 나무한테 절을 할 것인가? 십자가한테 빌 수 있을 것인가? 목불(木佛)한테 빌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며 가장 큰 어른인데 어찌 나보다 더 하찮은 존재한테 빌 수 있겠는가? 나는 아무 곳에도 도움을 구할 곳도 없고 빌 수 있는 데도 없으니 속수무책이구나. 무소도야(無所禱也)이니 빌 대상도 장소도 때도 없구나. 나는 어둠에서 만유가 나왔다는 원리를 깨친 뒤로 단 한 번도 어떤 것한테도 빌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축하(祝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빌 축(祝)자가 귀신한테 도와 달라고 비는 의미를 담고 있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빈다는 것은 내가 비는 대상의 첩이 되고 종이 되고 하인이 되겠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빌 대(貸), 빌 축(祝), 빌 걸(乞), 빌 차(借), 빌 임(賃) 이런 글자를 쓰지 않는다. 재수가 없는 글자들이기 때문이다.

빌린 것은 무엇이든지 반드시 나중에 높은 이자를 내고 갚아야 되는 것이다. 귀신한테 빌어서 얻은 것은 하루에 이자가 원금의 10배씩 늘어난다. 고리대금업도 이자가 10분지 1이 넘지 않도록 정해 놓고 있다. 사채(私債) 이자도 어느 정도 이상은 받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하여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귀신한테 빌어서 얻고 부처한테 빌어서 얻은 것, 무당한테 빌어서 얻고 천지신명한테 빌어서 얻은 것은 그 이자가 갚아야 할 것의 10배씩이 날마다 늘어나는 것이다.
무당한테 빌고 절에 가서 부처한테 하루를 빌면 그 날에 이틀로 갚아야 한다. 이틀 동안을 빌면 나흘 동안 갚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이든지 한 번 빌기 시작하면 일생을 아니 영원을 빈 대상의 종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빌고 빌면서 인생을 50-80년쯤 살다가 죽으면 그 다음 세상에서 태양이 꺼질 때까지 종살이를 해도 결코 다 갚을 수가 없다.
해탈(解脫)이란 무엇인가? 빌 곳이 없는 것, 빚을 진 곳이 없는 것이 곧 해탈이다. 빚을 모두 해결하고 나면 더 이상 걱정이 없고 번민(煩悶)이 없다. 아무 것한테도 빌린 바가 없어야 빌 데가 없는 것이 해탈인 것이다.
莊子- 云호대 天地는 與我로 並生하시고 而萬物은 與我로 爲一이로다 不器曰- 天地萬物이 與我로 並生이라시니 亦如- 天地萬物은 與我로 並歸하리니라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천지는 나와 더불어 나란히 났다고 하였다. 천지 만물은 다 함께 나와 같이 났으되 나는 그 천지가 생성되는 그 중심에 있었고 다른 만물은 그 변두리에 있었을 뿐이다. 서열(序列)이 다를 뿐이고 나이는 같은 것이다.
장자는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천지와 만물은 나와 더불어 나란히 생겨났고 만물과 내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곧 나와 만물이 다르지 않는 것 불이(不貳)인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갈 때에도 그 한 뿌리로 돌아갈 것이다. 귀천(歸天)이라는 말대로 난 곳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얼굴을 닦는 수건으로 발을 닦지 않고 발 닦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지 않는 것이다. 수건으로 세수를 하기 전에 발을 닦으면 발 닦는 수건으로 써야 할 것이다.
나는 어찌하여 만물이 생성될 때에 있었던 회오리의 중심 중의 중심에 서 있었는가? 어느 누구도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우연히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물질들이 어떻게 모이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지 내가 잘 나고 똑똑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한 없이 많은 것들 중에서 저절로 그렇게 나누어진 것일 뿐이다. 어둠과 추위가 뭉쳐서 회오리칠 때 우연히 그 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지능이 높은 생물로 우연하게 생겨나게 된 것일 뿐이다.
천지만물은 나와 나란히 태어났고 또 나란히 함께 돌아가리라. 돌아가되 혼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많은 생명들을 가르쳐서 구제하여 다 함께 돌아갈 것이다. 낙오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들한테 그 도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석가모니가 말하는 무여열반(無餘涅槃)이고 멸도(滅度)다.
낳는 자가 있고 낳지 않는 자가 있다. 하늘이 하늘을 낳고 구름이 구름을 낳는가? 생명이 없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을 잘 낳게 한다. 이것을 아는 것이 격물(格物)이다. 낳는 것은 생명이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을 잘 변하게 하는 것이다.
쌀은 썩는 것이다. 썩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도 썩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된다. 사람의 몸은 음식이 변화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해와 달과 별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을 더 잘 변하게 한다. 낳지 않은 것은 곧 태어나지 않는 것 스스로 번식하지 않는 것은 낳는 것들을 더 잘 낳게 하는 작용이 있다.

스스로 낳지 않는 하늘이나 땅 같은 것은 생명을 더 잘 낳게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을 더 잘 변하게 한다. 이를테면 변하지 않는 존재인 땅은 식물들 곧 잘 변하는 것들 잎이 낙엽이 되었다가 다시 잎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잘 변화하는 것들을 더 잘 변화하게 하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이 더 잘 자라게 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들을 더 잘 변하게 한다.
응독(凝獨)은 홀로 엉기어 있는 것이다. 추위와 어둠은 둘이 아니고 하나가 엉기어 있는 것이다. 소경한테는 흑백(黑白)이 없다. 소경은 희고 검은 것을 알지 못한다. 소경은 백마(白馬)와 흑마(黑馬)를 구별할 수 없다.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은 밝은 것을 알 수가 없다.
불생자(不生者)는 응독(凝獨)하고 낳지 않는 자는 홀로 엉기고 변화자(變化者)는 왕복(往復)하여 결코 그 끝이 없는 것이다. 응독(凝獨)하는 그 도는 블랙홀이 되었다가 다시 빅뱅을 일으키고 하는 그 도는 바닷물이 구름이 되고 구름이 작은 얼음가루가 되었다가 빗물이 되고 안개가 되어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가 하늘로 올라가기를 반복하는 그 도는 영원토록 결코 다함이 없다.
빅뱅에서 온갖 물질이 생겨나고 다시 중성자가 다시 태양이 되고 물질이 만들어지고 다시 수축하여 블랙홀이 되풀이되는 그 응독(凝獨)의 도는 끝이 없다. 이 세상은 결코 끝이 날 수가 없다. 영원토록 되풀이되기를 무한하게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이건 귀신이건 이 도(道)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다. 이 세상에 생명으로 왔으면 45억년 동안 이 지구에서 생명으로 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살아야 한다. 하늘이 나를 만든 것 아니고 땅이 나를 만든 것도 아니다. 어떤 신도 나를 만들지 않았고 만들 수도 없다. 그러므로 어떤 신이든지 신을 찬양하고 신한테 비는 것은 아주 잘못된 짓이다.
지식이 극치에 이르려면 우주의 극치를 알아야 한다. 우주의 극치를 내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런 지식을 얻고 보니 모든 학문이 만화책처럼 쉽게 보였다. 극치의 지식을 얻은 사람한테는 천지간에 속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도 땅도 사람도 귀신도 지극한 도를 얻은 사람을 속일 수 없다. 그래서 천고의 신비라고 하는 것이 극치의 지식을 얻은 사람한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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