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이야기

충신들의 시가를 비판한다

장생불사 2020. 1. 27. 22:38

충신들의 시가를 비판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입교편(入敎篇)충신(忠臣)은 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요 열녀(烈女)는 불갱이부(不更二夫)’라고 하였다. 충성스러운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정절(貞節)이 곧은 있는 여자는 한 지아비만을 받든다는 말이다. 이 말은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지 오직 한 사람만을 섬겨야 충신이 되고 열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아주 잘못된 말이다. 이 말대로라면 신하는 임금이 아무리 폭군이라도 섬겨야 하고 부인은 지아비가 아무리 못된 놈이라도 떠받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폭군을 섬기는 신하는 간신(奸臣)이지 충신이 아니며 못된 지아비를 섬기는 부인도 못된 남편의 공범(共犯)이지 열부(烈婦)가 아니다.

모든 선비들이 바라는 것은 벼슬자리를 얻는 것이다. 선비는 벼슬자리를 얻지 못하면 직업이 없다. 선비한테 벼슬을 주는 것은 임금이다.

그래서 선비들은 벼슬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를 준 임금한테만 마음이 쏠리게 된다. 그 임금이 무능하고 나쁘다고 해도 열심히 섬길 수밖에 없다. 만약 다른 아무리 훌륭한 임금이 나타났다고 해도 90퍼센트의 관리들이 새 임금을 배척하고 10퍼센트 정도만 따르려고 할 것이다.

 

옛날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반역이 일어났지만 대부분이 성공하지 못했다. 반역이 성공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조정에 있는 모든 관리들의 90퍼센트가 임금과 개인적인 정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홍경래 같은 반역자가 아무리 자질이 훌륭하다고 해도 관리들의 10퍼센트만이 그 쪽으로 가고 90퍼센트가 자질이 형편없고 변덕스러운 임금이라고 해도 옛 임금을 섬기려고 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역모가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신하들이 먼저 정이 들어 있는 임금한테 마음이 쏠려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벼슬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거문고를 잘 타고 시가(詩歌)에 아주 능한 이들이었다. 조정에서는 삼정승 육판서를 모두 시가를 잘 하는 사람을 골라서 뽑았다. 선비들이 지은 대부분의 시가는 여성적인 정서(情緖)와 감성(感性)과 한()을 표현하는 것들이다. 모든 관리들은 남성호르몬보다는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사람들이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송도(松都)의 두문동(杜門洞)에 숨은 고려의 충신 72현에게 좋은 대접을 해 주겠다고 아무리 회유를 해도 한 사람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성계가 골짜기에 불을 지르면 나올 줄 알고 불을 질렀으나 한 사람도 나오지 않고 모두 불에 타 죽었다.

먼저 임금인 공민왕한테 정이 들어 있어서 공민왕이 아무리 나쁘고 이성계가 훌륭하다고 해도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고 오직 옛 임금만 따르기로 작정한 것일 뿐이다.

 

고려 최고의 충신으로 꼽히는 정몽주가 지은 단심가(丹心歌)도 여성적인 정서가 가득 담긴 시조다.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대부분의 충신들이 남긴 시가들이 여성적인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 대장부의 기질이 담겨 있는 시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27살에 병조판서에 올랐다가 유자광(柳子光)의 모함으로 죽은 남이(南怡)장군이 지은 시와 일생을 벼슬을 하지 않고 지낸 남명 조식(曺植)이 지은 시 정도만 대장부의 시라고 할 수 있다.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다 닳아 없애고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라

사나이 이십에 나라를 편안하게 하지 못 하면

후세에 누가 일러 대장부라고 하리오

 

 

全身四十年前累

千斛淸淵洗盡休

塵土倘能生五內

直今刳腹付歸流

 

온 몸에 쌓인 사십년 허물

천섬들이 맑은 물에 씻어 없애리

그래도 오장에 티끌이 생기면

곧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부치리

 

남명 조식은 칼을 찬 선비라는 별명대로 임금한테 아양이나 떨던 다른 선비들과 달리 강직한 성품으로 임금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비판했으나 벼슬에 나가는 것을 애써 멀리했기 때문에 화를 입지 않았다.

그는 안으로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결단케 하는 것은 의()이다(內明者敬 外斷者義)’라는 글씨를 새긴 경의검(敬義劍)이라는 칼 한 자루를 늘 허리에 차고 다녔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지은 시조 역시 여성적인 정서가 가득하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정몽주나 이순신 장군의 시에는 임금한테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임금한테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고 싶은데 그 반대로 미움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이 분들의 시에는 사랑하는 정인(情人)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딴 여자한테 관심이 쏠려 있다면 얼마나 속이 터지겠는가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시가에서 시조나 넉 자의 운율에 맞추어 놓은 것은 다 노래이다. ()과 다른 것이 운()이다. 운율(韻律)에 맞춘 것은 다 노래다. 중국말은 거의 모든 말이 운율로 되어 있다. 중국어는 모든 말이 노래 가사와 같다. 중국어는 4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같은 말인 데에도 길이와 높낮이에 따라서 뜻이 다르다. 중국어는 여성적인 정서를 표현하기에 아주 좋은 말이다. 중국말은 시가(詩歌)를 소리로 표현하기에 아주 좋다.

일성호가(一聲胡歌)의 호()는 되놈 호(), 오랑캐 호()이다. 오랑캐의 노래 소리가 일성호가이다. 이순신 장군은 오랑캐의 피리 소리를 듣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을 느낀 것이다.

누구든지 음악을 들으면 님이 보고 싶고 마누라나 자식들이 보고 싶어진다. 님이 그리워서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신하들의 마음은 다 님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 뿐이다. 그 님은 오직 임금이다. 이처럼 시가와 음률을 좋아하고 마음이 문약(文弱)한 선비를 관리를 뽑아야 오직 임금 밖에 모르는 충신이 되는 것이다.

 

조선의 임금들은 시키는 말을 잘 듣지 않고 꼬치꼬치 따지고 반발하는 사람을 절대로 관리로 채용하지 않았다. 시를 잘 짓고 음악을 잘 하는 사람만 과거에 합격시켜 관리로 채용하였다. 과거의 시험 문제는 모두 시가(詩歌)와 산문(散文)이었다. 정치를 잘 하는 데에는 시문(詩文)이 필요가 없다.

시문을 잘 하는 사람을 관리를 뽑은 것은 임금이 밑에 두고 거느리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임금이 신하들을 다스리기 위한 고도의 책략이다.

시가와 정치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시가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시가를 잘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구멍가게 하나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 국무총리는 엿장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국무총리는 백성을 잘 다스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대통령한테 잘 보이는 것이 목적이다. 국민들은 어떻게 되든지 상관이 없고 대통령한테 잘 보이기만 하면 되는 자리가 국무총리다.

엿장수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건달들이 수시로 와서 세금을 내라, 보호세를 달라고 해서 돈을 뜯어가고 텃세도 심하다. 엿판을 발로 차서 엎어 다 깨트려 놓고 10분지 1값에 모두 내놔라 하고 빼앗아 간다. 한 놈이 발로 차서 엎어 놓고 다른 놈이 공갈하고 으름장을 놓아서 다 뜯어간다. 엿장수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에서 직원을 뽑을 때에도 사장이나 상사한테 잘 따르는 사람을 주로 뽑는다. 노래방에 가서 미친 듯이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 하고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라야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밤낮 기업의 임원들이나 상사들한테 아첨하고 의지해야 승진할 수 있다.

두문동 72현이 실제로 현인(賢人)들이었다면 불에 타서 죽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이성계를 죽이기 위해 모반(謀反)을 하거나 바깥으로 나와서 잘못된 세상을 뜯어고치려고 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공민왕만을 좋아하여 임금으로 인정하고 이성계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세조한테 충성하지 않고 단종을 복위시키려고 모반(謀反)을 꾀하다가 죽은 사육신(死六臣)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이성계나 세조가 공민왕이나 단종보다 정치를 백 배를 더 잘 한다고 해도 새 임금한테는 가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었을 뿐이다.

충신(忠臣)은 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요 열녀(烈女)는 불갱이부(不更二夫)’라고 한 말은 공자(孔子)가 한 말이 아니다. 중국 전국시대에 제나라의 왕촉(王蠋)이 한 말이다. 그는 제나라가 연나라와의 싸움에 지게 되자 항복하지 않고 자살했다.

옛날 성균관에서 벼슬길에 내보낼 학자를 뽑을 때 시가를 잘 짓고 음악을 잘 하는 사람을 골라서 뽑았다. 시가나 음악은 여성적인 처량한 감정을 나타낸 것이 80퍼센트가 넘는다. 유약한 글쟁이들만 골라서 관리로 채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웅장하고 남성적인 시가(詩歌)와 밝고 활기가 넘치는 음악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느끼는 것도 여성 호르몬 때문일 뿐이다.

남자든지 여자든지 도()를 이루는 데에는 시문(詩文)이나 음악이 전혀 필요 없다. 진정한 자아를 찾은 사람은 외부의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어떤 감정이나 감성, 오감(五感)도 그 정신을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