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이야기

구상나무가 아니라 설라송이다

장생불사 2020. 3. 14. 20:51

구상나무가 아니라 설라송이다

 

다음의 글은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을 정리한 것이다.

 

오래 전에 설악산에 갔다가 돌아오는 중에 산길에서 묘목 한 그루가 길옆에 떨어져 있었다. 어린 구상나무 묘목이었다. 트럭에 묘목을 헐렁하게 묶어서 싣고 가다가 차가 흔들리면서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지나쳐 가려고 하는데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묘목이 저 놈은 팔이 있으면서도 얼핏 나를 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쳐 가는구나하고 욕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묘목이 팔을 갖고 있으면서도 도와주려고 하지는 않고 해코지만 하고 가는 놈이라고 욕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100미터쯤 지나쳐서 갔다가 도로 돌아가서 휴지를 꺼내서 개울에서 물을 묻혀 뿌리를 싼 다음 비닐봉지로 싸서 배낭에 넣어 집으로 갖고 왔다. 집으로 갖고 와서 화분에 심고 집 뒤에 있는 온실 화원(花園) 안에 넣어 두었다.

겨울에는 화분에 있는 흙이 바닥까지 얼면 뿌리가 얼어서 나무가 말라죽는다. 그래서 작은 온실을 하나 만들어서 사람들이 내다 버린 화분을 주워 모아서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뒤에 동짓달인가 섣달 어느 밤중에 글을 쓰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다음과 같이 사람을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은 용서할 수 없는 사악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 말은 사람이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는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눈을 홀기는 것은 욕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러 번 반복해서 들리는데 가만히 기울여 들어 보아도 사람의 소리는 전혀 아닌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밖에 나가 사방을 둘러 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다시 방안에 들어오면 또 인간을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세 번을 밖에 나가서 어디서 그런 소리가 나는지 살펴보았다. 세 번째 밖에 나가서 살펴보고 나서야 그 소리가 화원에 두었던 구상나무가 내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이 우리를 베어 상여도 만들고 널도 짜고 홍대도 하고 집도 짓고 땔감으로 쓰고 필요한 대로 쓰는 것은 좋은데 왜 하필이면 이름까지도 구상나무라고 부른단 말이냐?”

 

나는 그 때까지 그 나무가 구상나무인 줄 몰랐다. 한자로 구상나무를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구상나무를 널 구()에 장사지낼 상()으로 쓴다. 옛날부터 구상나무로 상여도 만들고 상여 귀퉁이에 붙이는 봉황 같은 것을 깎는데 썼다. 구상나무로 장례를 지낼 때 필요한 재료로 많이 쓴다. 나무를 베어 죽이는 것까지는 좋으나 이름까지도 구상목이라고 재수 없는 이름으로 부른다. 나무가 제 이름을 널을 짜고 장사를 지내는 나무라고 부른다고 사람을 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한다. 세상에서 불쌍한 나무는 베어서 깎여서 신주(神主)가 되고 십자가(十字架)가 되고 부처상이 되는 것이다. 모든 나무는 관이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죽음과 관련된 것을 가장 싫어한다. 신이 죽음이고 죽음이 신이다. 귀신 신()을 나무는 가장 싫어한다.

나중에 그 나무가 구상나무라고 부른다는 것을 묘목을 판매하는 가게에 가서 물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 어린 나무한테 말했다.

 

 

네가 하는 말을 다 들었다. 네 말이 과연 맞구나. 사람들이 너희를 괴롭히고 이용하기만 하고 아무런 보상도 해 주지 않으면서 이름마저 나쁘게 지었구나. 내가 너희들한테 어울리는 훌륭한 이름을 새로 지어 주겠다.”

 

그래서 그 나무의 이름을 바꿔 주기로 하였다. 그 다음날 종로 5가에 묘목상에 갔다가 그 나무의 묘목을 팔고 남은 것을 화분에 심어 놓은 것을 보았다. 가게 주인한테 이것이 무슨 나무냐고 물었더니 구상나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 나무를 사람들이 구상나무라고 부르는 줄 안 것이다.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있는 명패를 파는 가게에 가서 새로 만든 이름을 붙일 명패를 수백 개를 사서 새로 만든 이름을 새겼다. 그 이름표에 고무줄을 달아서 산에 가서 그 나무 수백 그루에 이름표를 달아 주었다.

설악산에서부터 태백산을 거쳐 한라산까지 가서 그 나무 수백 그루에 설라송(雪拏松)이라고 쓴 명패를 달아주었던 것이다. 구상나무한테 설라송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 붙여 주었다. 설라송은 설악(雪嶽)부터 한라(漢拏)까지 우리나라에 자라는 소나무라는 뜻이다. 이 나무는 사람들한테 나쁜 이름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고 나는 그 한을 풀어 주었다.

 

 

이제 우리나라에 구상나무는 없다. 설라송으로 불러야 한다. 설라송은 우리나라의 특산식물이다. 특산이란 말은 특히 우리나라에서만 나고 다른 나라에는 없다는 뜻이다. 설라송은 오직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식물이다.

미국에서는 성탄절에 장식할 때 쓰는 나무로 설라송을 많이 쓴다. 수형(樹形)이 단정하여 보기에 좋고 장식물을 달기에 좋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설라송이 오래 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성탄절 장식용으로 쓰기 위하여 엄청나게 넓은 면적에 재배를 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설라송들이 해골처럼 말라죽어가고 있다. 한라산에 있는 설라송 군락지는 이미 절반 가까이가 말라 죽어 고사목(枯死木)으로 변했다. 인간들이 만든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때문에 설라송들이 숨을 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물을 사람이 마실 수 없고 우마육축이 살지 못하는 땅에 사람이 살 수 없으며 풀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땅에 사람이 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