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이야기

하도와 낙서를 말하다

장생불사 2020. 3. 7. 22:38

하도와 낙서를 말하다

 

역학(易學)을 하는 사람들이나 일부 민족종교에서 선천(先天)이나 후천(後天)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선천의 선()은 앞날 선()이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이 선천(先天)이다. 선지자(先知者)는 앞날에 일어날 일을 먼저 아는 사람이다. ()는 뒤 후() 뒷날 후(). 지나간 날이 뒷날이다. 과거가 후천이고 미래 세상이 선천이다. 뒷날이 후천이고 앞날이 선천이다.

그런데 지금 모든 사람들이 선천이 뒷날이고 후천이 앞날인줄 잘못 알고 있다. 앞뒤를 거꾸로 알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어제를 작천(昨天)이라고 하고 내일을 명천(明天)이라고 하며 모레를 후천(後天)이라고 한다. 앞뒤를 모르면서 어찌 좌우를 알 수 있겠는가?

 

 

낙서(洛書)는 후천(後天) 세상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그런데 앞으로 후천(後天) 개벽(開闢)이 일어나서 낙서(洛書) 시대가 올 것이라고 여기고 그것이 옳다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지나간 날의 달력을 갖다 놓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 세계의 달력이라고 우기며 공부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현토본(懸吐本) 하도해(河圖解)는 복희씨(伏羲氏)의 선천(先天) 팔괘(八卦)를 풀이한 것이다. 하도(河圖)는 통합(統合)과 상생(相生)을 나타낸 그림이다. 낙서(洛書)는 모든 것이 산란(散亂)하고 복잡하며 온 사방으로 분산(分散)하여 흩어지는 것을 나타낸 그림이다. 하도는 그 반대로 가장 안쪽에 있는 구심점(求心點)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것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하도(河圖)는 미래 세상을 위한 이정표(里程標)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세상은 낙서와 하도의 중간쯤, 곧 낙서(洛書) 시대에서 하도(河圖) 시대로 넘어가는 어중간한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 우리는 낙서에서 하도로 바뀌는 교체기(交替期)에 와 있는 것이다.

낙서(洛書)는 후천(後天) 팔괘(八卦)를 나타낸 그림으로 분산(分散)과 상극(相剋)을 나타내는 글이다. 후천 팔괘는 과거의 일, 곧 지나간 날의 노정(路程)을 풀이한 글이다. 현재는 모든 것이 어중간하고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온갖 질병이 만연(蔓延)하고 온갖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며 일기예보가 제대로 맞지 않고 기상이변이나 자연재해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서울 강남에 있는 어느 의사가 말하기를 요즘 기록에 나타나 있는 질병의 숫자가 64천 가지가 넘는다고 하였다. 옛날에는 모든 질병의 숫자가 81가지를 넘지 않았다. 화타(華佗)나 편작(扁鵲) 같은 명의들이 기록으로 남긴 병의 종류가 54가지이고 여기에 앞으로 올 질병을 서른 가지쯤 더 보태어 모두 81가지 밖에 되지 않았다.

화타(華陀)나 편작(扁鵲) 같은 분이 명의(名醫)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 올 질병을 미리 알고 그 치료법을 책에 기록하여 남겼기 때문이다. 미래에 다가 올 병을 미리 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공자(孔子)는 낙서가 낙수(洛水)라는 강에서 얻은 것이라고 하였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보면 낙수에서 나온 거북등에 낙서의 그림이 찍혀 있었는데 9를 싣고, 1을 깔고, 왼쪽에 3, 오른쪽에 7, 24가 어깨에, 68이 발에 그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낙수에서 나온 거북이 등에 그림이 찍혀 있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낙서가 낙수(洛水)에서 나오지 않고 황하(黃河)에서 나왔다면 황서(黃書)라고 부를 것인가?

한자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보아야 이해하기가 훨씬 쉽다. 하도(河圖)의 하()는 물 하()자다. 물 하()는 삼 수() 변에 옳을 가()가 붙어 있다. 물은 흐르는 것이 본성이다. 물은 어디로든지 흘러가서 모이거나 흩어지는 성질이 있다.

옳을 가()의 형상을 자세히 보면 안으로 모여드는 소용돌이 형국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옳다고 하면 그 쪽으로 주변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낙서(洛書)의 락()은 떨어질 락()이다. 빗물이 지붕 위에 떨어지면 추녀 끝이 향하는 대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땅에 떨어져서 산지사방(散之四方)으로 흩어져서 흘러간다. 낙서는 분산(分散)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하도와 낙서를 나타내는 그림은 다음과 같다.

 

 

 

하도와 낙서는 순행(順行)과 역행(逆行)을 나타낸다. 하도는 순행이고 낙서는 역행이다. 하도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길상도(吉祥圖)라고 할 수 있다. 하도는 저절로 모이는 것을 나타낸다. 한 사람이 옳다고 소리 내어 외치면 사방에서 그를 중심으로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반대로 낙서는 사방(四方)으로 각각 흩어지는 것이다. 하도는 옳다고 하는 것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모여드는 것이고, 낙서는 각기 서로 아니라고 해서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곳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지금 세상에 있는 종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을 만한 힘이 없다. 그럴 수 있을 만한 이치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불교가 제일이라고 하여 다른 종교를 배척하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기독교가 제일이라고 하여 다른 종교를 배척한다.

각자 자신이 속한 종교만 옳다고 주장하면 광신도(狂信徒)가 된다. 그 밖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교와 종파가 있어서 각각 서로 옳다고 외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이 한 곳으로 집중되어 모이기는커녕 반대로 이리 저리 사방으로 흩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도가 황하(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배에 그려져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전설을 그대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복희씨(伏羲氏)8,000년쯤 전에 하도(河圖)를 지을 때에는 황하(黃河)가 지금의 강 모양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 때에는 지금의 서해 바다의 한가운데쯤에 세로로 지금의 한강(漢江) 정도쯤 되는 작은 강이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때에는 해수면의 수위가 지금보다 120미터가 더 낮았으므로 지금의 서해는 바다가 아니라 드넓은 평야였다.

4,300년 전에 단군 임금 시절에 천체 궤도의 변화로 1년에 366일이던 것이 365일로 바뀌면서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지구 대기의 온도가 갑자기 높아져서 지금의 몽골 지방과 백두산과 히말라야 산맥 등에 수천 미터 이상의 높이로 쌓여 있던 만년설(萬年雪)이 녹아서 흘러내려 대홍수가 났다.

그 때 대홍수로 인해 바다가 범람하여 해수면이 120미터가 높아지면서 지금의 서해바다 일대가 잠겨서 지금의 황해(黃海)가 생긴 것이다. 그 때 지금의 중국 땅에서는 물이 많이 차올라서 하우씨(夏禹氏)가 물을 빼내느라고 고생을 많이 하였다. 그 때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으므로 나라 이름을 여름 하()자를 써서 하나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고 경사가 많아서 일부러 치수(治水)를 하지 않아도 물이 잘 빠졌다.

 

 

그 때에 부르던 산 이름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태백산(太白山)은 꼭대기에 늘 만년설(萬年雪)을 이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고 함백산(咸白山)은 늘 흰 눈에 덮여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며 소백산(小白山)은 산꼭대기 부분만 약간 만년설이 있다고 붙인 이름이다. 백두산(白頭山)은 늘 산꼭대기가 하얗게 만년설에 덮여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산꼭대기에 5천 미터쯤 높이로 쌓여 있어서 지금보다 7-8천 미터가 더 높았다.

지금의 강화도 같은 서해 지방이나 경기 지방에서도 산머리가 하얗게 보이므로 백두산이나 장백산(長白山)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지금은 경기 자방이나 서해 지방에서 백두산이 보이지 않는다.

백두산이 경기 지방에서도 보이려면 지금보다 2,500미터 가량 더 높아야 한다. 설악산(雪嶽山)은 골짜기까지 모두 눈에 덮여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고 개골산은 나무가 없고 바위만 드러나 있어서 개골산(皆骨山)이라고 붙인 것이다. 설악은 7부 능선 정도까지 눈이 쌓여 있었고 금강산(金剛山)은 다 개()에 뼈 골(), 곧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고 뼈 밖에 없는 산이라고 해서 개골산이라고 불렀다.

6,000년 동안 이들 서북쪽에 있는 산에는 수천 미터 두께의 만년설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43백 년 전에 9년 동안 큰 홍수가 나서 지금의 몽골 지방에 3,000미터 이상의 두께로 쌓여 있던 만년설이 모두 녹아 흘러내리면서 엄청난 양의 토사(土砂)가 중국 땅을 덮어버렸다.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면서 밀려 온 토사가 중국 땅의 표면을 100미터 높이로 덮어서 지금의 하북(河北) 평원이나 만주 벌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때 황제(黃帝)도 그 때 마실 물을 구할 수 없어서 운하(運河)로 물길을 만들고 운하의 물을 일곱 겹의 비단 천으로 걸러서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비단 천으로 물을 걸러서 마셔도 바이러스는 걸러지지 않기 때문에 중국 땅에서는 갖가지 전염병이 유행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땅은 지금도 물이 좋지 않다. 땅을 100미터 넘게 파도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물에 석회질 성분이 많아서 그대로 마시면 온갖 질병에 걸릴 수밖에 없으므로 반드시 끓여서 마시거나 녹차나 보이차 따위를 우려서 마시는 차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차는 본디 옛날에는 살충제로 쓰던 것이다. 녹차를 달인 물이나 녹차 잎을 즙을 내어 재래식 화장실에 넣으면 구더기가 모두 죽어서 없어진다. 녹차는 자연분해 천연농약과 같은 것이다. 또 몸을 차갑게 하고 몸의 기능을 마비시켜서 신진대사 작용을 낮추는 작용이 있다. 녹차를 마시면 에너지가 비어 있는 상태가 된다.

우리나라에 차를 처음 들여 온 사람은 신라 때의 진감선사(眞鑑禪師)이다. 진감선사는 요즘 말로 하면 오렌지족 비슷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함부로 쓰고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오렌지족이다. 진감선사는 당나라를 오가면서 값지고 귀한 물건들을 갖고 와서 돈이 많은 귀족 부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중국에서 차를 들여와서 귀족 부인들한테 팔다가 차나무 종자를 갖고 와서 쌍계사 주변에 심어 번식시킨 것이다.

세계에서 땅에 흐르는 물을 그대로 먹을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말고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물에 대해서는 가장 복을 많이 받은 나라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수를 두고 커피나 녹차를 마시는 것은 일부러 비싼 돈을 들여서 몸을 오염시키는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80년대에 중국 고위층에 있는 사람의 초청으로 북경에 갔을 때 일을 다 마치고 나서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갈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 민족들이 사는 곳을 살펴보고 싶다고 해서 길림성에 있는 용정에 가서 3일 동안 머물렀던 적이 있다. 중국 고위층에서 허락을 해 주어서 특별한 신분으로 여기저기를 마음대로 걸어서 다녀 보았다.

 

 

안내원 없이 혼자 나와서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가 보니 개울이 있어 끝없이 곧게 이어지는데 개울의 둑으로 길이 나 있었다. 넓은 논밭 사이로 난 둑길로 한참 걸어갔더니 마을이 하나 나왔다. 마을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한 줄로 길게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집들은 한 쪽은 밭에 기둥을 세우고 반대쪽은 개울에 기둥을 세웠는데 절반쯤 개울 위에 마루가 물 위에 덮여 있고 그 위에 여러 가지 살림살이가 갖추어져 있었다. 집들이 반쯤 개울 위에 걸려 있는 것이다. 집들이 모두 염전에 있는 소금창고처럼 허술하였는데 개울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 보면서 수백 채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마을을 지나가다가 목이 말라서 물을 한 잔 얻어 마시려고 어느 집 사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집 안을 살펴보았다. 화장실이 집 바깥에 있는데 문이 제대로 붙어 있지 않아서 똥을 누는 모습이 밖에서도 훤하게 다 보일 정도로 허술했다. 그리고 똥을 누면 바로 개울로 떨어져서 물을 따라 흘러내려가도록 되어 있었다. 개울물이 흐르고 있기는 하지만 흐름이 매우 완만하여 거의 고인 물과 비슷하였고, 물이 부영양화로 인해 썩어서 이끼가 많이 끼었고 냄새가 심하게 났다. 집집마다 화장실이 물 위에 지어져 있어서 모든 오물이 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초겨울이었지만 물에 시퍼런 이끼가 끼어 있었다. 집집마다 자기 집 밑에 김발 같은 것을 물에 띄워 걸쳐서 이끼나 더러운 오물들이 흘러들지 못하도록 막아 놓고 그 물을 떠서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식수로 쓰고 있었다. 부영양화 상태가 되어 썩은 물은 푹 삭혀야 냄새가 덜 나는 법이다. 그 물을 퍼서 끓여서 식수로 마시는데 나는 구역질이 나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옛날에 용정(龍井)이라는 좋은 우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말라서 없어졌다고 한다. 물에 차를 넣고 끓여서 주는데 구역질이 나서 마시지 못했다. 중국은 이처럼 물이 더러워서 차를 마시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나라이다.

풍토병(風土病)은 물과 제일 관련이 깊다. 물에 온갖 균이 많고 바이러스가 많아서 중국에서는 반드시 물을 끓여서 마시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바빠도 물은 끓여서 마셔야 하는 것이다.

손님이 오면 음식을 대접하는 것, 곧 밥을 대접하는 것보다 물을 대접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에 다례(茶禮)라고 하여 차를 바치는 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차례(茶禮)라는 이름이 귀신한테 음식을 제대로 차려서 바치는 것보다 물을 한 그릇 바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차를 마시면 살이 빠진다. 차는 살을 빼는 데는 나쁘지 않다. 옛날 중국에서 도를 닦거나 수련하는 사람들이 토질(土疾)이나 수질(水疾)에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차를 마셨다.

수질이나 토질에 걸리면 몸이 천 근이나 만 근이 되는 것처럼 무겁다. 중국에서는 수질이나 토질에 걸리지 않도록 물에 있는 독을 없애기 위해서 차를 마시는 전통이 생겨난 것이다.

요즘 다도(茶道)라고 하여 차를 마시는 것에 무슨 대단한 도()가 있는 것처럼 떠들어 대는 사람이 많은데 차를 마시는데 무슨 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은 이런 것에 미혹될수록 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본래 사람들은 좋지 않은 것은 가르치지 않아도 잘 하고 좋은 것은 아무리 가르쳐도 잘 안 하는 법이다.

좋은 일은 아무리 가르쳐도 하지 않고 나쁜 일은 아무도 가르치지 않는데 잘 한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욕설을 아무도 가르치지 않는데 욕설을 잘 한다. 요새 아이들은 욕을 잘 못하면 바보로 여긴다. 나쁜 짓을 하라고 아무도 가르치지 않는데 세상은 나쁜 짓을 하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본래 좋지 않은 일이나 옳지 않은 일에 사람들이 더 많이 따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영조대왕(英祖大王)도 어제서(御製書)에서 이르기를 서자서(書者書) 아자아(我者我)’라고 하였다. 글은 글일 뿐이고 나는 나대로 산다는 뜻이다. 인의도덕(仁義道德)으로 백성들한테 선정(善政)을 베풀고... 글은 이런 식으로 쓰지만 실제 행동은 그대로 따라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언행(言行)이 일치(一致)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낙서(洛書)는 짝수 숫자가 네 모퉁이에 끼어 있다. 곧 음()이 네 모퉁이에 붙어 있다. 이는 음() 곧 여성이 무시를 당하는 시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하도(河圖)에서는 음수(陰數)가 사방의 정면 한가운데에 배치되어 있다.

하도를 보면 북쪽에는 16이 짝을 이루고, 남방에는 27이 짝을 이루며, 동방에는 38이 짝을 이루고, 서방에는 49가 짝을 이루고 있으며, 중앙에는 510이 짝을 이루고 있다. 반대로 낙서는 짝이 하나도 맞지 않고 모서리에 배치되어 있다.

낙서는 양()이 주도(主導)하는 남자들의 시대이고 하도는 음()이 주도하는 여성들의 시대이다.

하도와 낙서를 글자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림으로 이해하면 더 알기가 쉬다. 금강산(金剛山)을 문장가가 글로 표현한 것을 읽는 것보다는 직접 가서 눈으로 보든지 텔레비전에 영상으로 나오는 것을 보는 것이 그 진짜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자는 그림이 변해서 만들어진 글자다. 글보다는 그림이 풀이하기가 더 쉽다. 그림이 글보다 읽기가 쉬운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글을 읽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림을 읽을 줄 모른다.

 

 

하도해(河圖解)는 구전(口傳)으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글이다. 다른 수백 가지 주역 책에는 하도해(河圖解)라는 글이 다 빠져 있다. 옛날에 읽었던 이 글을 다시 찾으려고 국립 도서관에 가서 옛날부터 출간된 모든 주역에 대한 기록들을 1,000여권 가량을 열람하여 어렵게 다시 찾아낸 것이 하도해(河圖解)이다.

하도해를 어렵게 찾아내어 살펴보니 내가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는 것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그 책을 대여(貸與)해 주지 않아서 빌려 올 수가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복사기가 흔하지 않았으므로 복사를 할 수도 없어서 열람해서 읽어 보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맞는지 아닌지를 대조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도와 낙서에서 오행(五行)이 나왔다. 낙서(洛書)는 미완성된 세상을 나타내는 것이고 하도(河圖)는 완성된 세상을 나타낸다. 지금 세상은 미완성의 낙서 세상이다. 노자(老子)천지(天地)는 불인(不仁)’이라고 했다. 불인이라는 말은 노자가 지어 낸 말이 아니고 황제(黃帝)가 처음 만든 말이다.

<황제내경(黃帝內徑)>은 의학의 최고 경전이고 약초에 대한 최고 최초의 원전은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다. ()가 흐르는 곳을 경락(經絡)이라고 하고 피가 흐르는 곳을 혈관이라고 하는 등 의학과 관련된 용어를 황제가 처음 만들었다.

불인(不仁)이라는 말은 <황제내경>에 처음 나온다. 불인이라는 말은 완전하지 않다는 말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석하는 대로 인자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하늘과 땅이 완전하지 않아서, 곧 완벽하지 못해서 하늘과 땅에서 나온 사람도 온전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스승님께서 천문도(天文圖)를 그릴 때 스무 번 넘게 시도를 해서 21번 만에 제대로 완전하게 그릴 수 있었다. 첫 번에 그린 것은 대충 그려서 매우 엉성하였고, 몇 번 반복해서 그릴수록 조금씩 나아져서 마지막에서야 제대로 된 천문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하늘과 땅이 온전하지 않으면 그 하늘과 땅에 기대어 사는 만물이 모두 온전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불인(不仁)이라는 말은 의학용어로 유전질환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모가 병신이면 자손도 병신을 낳게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곱사등이를 낳는 집안이나 소경을 낳는 집안에서는 자식을 낳지 않으려고 하였다.

천지가 불량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온전하지 못해서 천지가 길러내는 사람도 온전하지 않은 것이다. 천지가 온전하지 않은데 성인이 온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인들도 백성들을 온전하게 이끌어 주지 못한다. 석가모니나 예수, 공자 같은 성인도 백성들을 잘못 가르치고 잘못 인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늘이 완전하지 못하므로 성인의 가르침이라고 해도 완전할 수가 없다.

근사(近似)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목표점에 가까이 갔다는 뜻이다. 근사할 뿐이고 완전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100퍼센트 완벽한 것이 아니고 가깝게 갔다고 하여 여지(餘地)를 남겨두는 것이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완성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마치 지푸라기로 만든 인형과 같아서 아직은 허술하지만 차츰 발전하여 훌륭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도는 오행(五行)이 모두 화합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이 되어 서로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수극화(水克火), 화극금(火克金), 금극목(金克木), 목극토(木克土)의 상극(相剋) 관계가 없다.

 

 

하도에는 서로가 서로를 돕는 상생(相生)의 이치가 나타나 있다. 하도는 왼 발과 오른 발, 오른손과 왼손처럼 짝이 잘 맞는 상태를 가리킨다.

낙서(洛書)에는 상생(相生)이 없고 상극(相剋) 관계가 드러난다. 목생화(木生火)도 안 되고 금생수(金生水)도 안 된다. 가운데 토()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수극화(水克火), 화극금(火克金), 금극목(金克木)은 가능하다. 이것은 서로 상극(相剋)하는 원리를 담고 있다.

나무는 어느 땅에서나 뿌리를 박고 자라므로 목극토(木克土)이다. 그러나 물이 있으므로 목생화(木生火)가 되지 않는다. 낙서는 상극지리(相剋之理)를 나타낸다.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이 되는 세상이 낙서 세상이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세상이 낙서 세상이다.

아이엠 에프 때에 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5부나 10부를 받아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악덕 고리대금업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처럼 남을 고통스럽게 하고 손해를 보게 하여 이득을 얻는 시대가 낙서시대이다. 형제와 형제,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가 서로 반목하고 믿을 수 없게 되어 있는 현재의 세상이 낙서 세상이다.

제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극의 시대에서 상생의 시대로 바뀌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하도와 낙서 그림이다. 낙서 시대는 내가 10만원을 잃어야 다른 사람이 10만원을 얻게 되는 세상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이고 남자의 적은 남자이다.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싸워서 이긴 사람이 살아남는 세상이다. 남을 모함하고, 시기하고, 약점을 공격하고 늘어져서 해쳐야 성공하는 세상이 낙서 시대이다.

 

 

공자(孔子)가 죽기 전에 7천여 명이나 되는 제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이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제자들 중에서 자공을 빼고 이 말을 이해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공자는 일생 동안 인의도덕(仁義道德)을 가르친 사람이다. 제자들에게 늘 착한 일을 하면 하늘이 복을 줄 것이고 나쁜 일을 하면 하늘이 벌을 줄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공자의 마지막 유언을 들은 제자들은 순천자존역천자망(順天者存逆天者亡)이라는 말이 공자가 지금까지 평생 가르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공자한테는 우두머리 제자가 10명이 있었고 그 열 명한테 각각 10명씩의 제자가 있었으며 다시 그 열 명 아래에 각각 10명씩 제자를 두게 하여 모두 7천 여 명이나 되었다. 공자는 그토록 많은 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살아남고 하늘의 뜻을 거스리는 사람은 망해서 없어진다는 말이었다.

공자의 당상(堂上) 제자로는 안자(晏子), 자공, 증자(曾子) 등이 있었다. 뜰 아래쪽에 있는 제자들도 공자의 유언을 듣기는 했으나 아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얼굴빛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제자들은 착하게 사는 것이 순천(順天)이고 악하게 사는 것이 역천(逆天)이라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많은 제자들이 선생님 말씀이 전에 늘 하시던 말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구나. 겨우 이 말씀을 하시려고 먼 곳에 있는 제자들을 한 곳에 다 모이라고 하신 것인가하고 마음속으로 불평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오직 수제자인 자공만이 공자가 한 말의 뜻을 알아듣고 공자한테 물었다.

 

선생님 여쭐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말의 뜻을 당하(堂下)에 있는 제자들한테 풀이하여 그대로 전할까요?”

 

공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네 입에 곤륜산(崑崙山)을 올려놓은 것처럼 하라.”

 

곧 구중곤륜산(口重崑崙山)하라고 하였다. 곤륜산은 지구상에서 제일 높고 큰 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공자가 죽기 전에 한 순천자존역천자망(順天者存逆天者亡)이라는 말은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자연의 순리(順理)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살아남을 것이고,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게 사는 사람은 망하여 없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는 자연의 순리를 따라 사는 사람만이 살아남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순리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선하게 사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가?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자연의 순리가 아니다. 물이 흐르는 데로 따라서 흘러 내려가는 것이 순리다.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순리인 것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르고 세상이 생존하고 만물이 살아가는 원리, 만물이 살아가는 생존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순리다.

자연계에서 생물이 살아가는 가장 큰 방식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이다. 맹수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저보다 약한 동물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고 살아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연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도 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스승님은 공자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이 순천자존역천자망(順天者存逆天者亡)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더 이상 공자를 욕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하셨다. 그 전까지 스승님한테 공자는 멍청한 학자의 표본이었다.

공자(孔子)의 이름은 구()이다. 유학을 숭상했던 이씨 조선에서는 공자를 존경하여 감히 누구도 이름에 언덕 구()자를 쓰지 못했다. 이씨 조선 오백 년 동안에 이름에 언덕 구()자를 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25백 년 동안 언덕 구() 자를 지극히 신성한 글자로 여겨 아무도 이름으로 쓰지 못했던 것이다.

낙서(洛書) 시대에서는 남과 대결해서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오행(五行)이 상극(相剋)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착한 일을 하면 하늘이 복을 주고 나쁜 일을 하면 하늘이 벌을 준다는 말은 낙서 시대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이 말은 하도시대에서는 맞는 말이다.

지금의 낙서 시대에는 악한 사람한테 하늘이 재앙을 내리지도 않고 선한 사람한테 복을 주지도 않는다. 하늘은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가리지 않고 꼭 같이 비를 내리고 햇볕을 비추어 줄 뿐이고, 그들의 선악(善惡)과 미추(美醜)에 관여하지 않는다.

지금 낙서시대에는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화를 입는다. 그런데 착한 일을 했는데 하늘이 복을 주지 않으면 공자가 복을 대신 줄 수 있겠는가. 김일성이나 김정일, 김정은 같은 자는 나쁜 짓을 매우 많이 했는데 하늘이 벌을 주어서 빨리 죽게 하고 그 집안을 망하게 해야 할 터인데 하늘이 그렇게 하였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화를 누리다가 죽었고 지금은 김정은이 절대 권력을 물려받아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스승님께서는 공자한테 욕을 하면 성인을 모욕한다고 해서 아버지한테 매를 많이 맞았다. 그러면 스승님은 공자가 성인이면 나는 대체 무엇이냐고 따지기도 하고 아버지한테 잘못은 공자가 했는데 내가 왜 맞아야 하느냐고 따지기도 하셨다.

지금의 시대는 상극(相剋)의 이치가 세상을 지배하는 낙서(洛書) 세상이다. 상생(相生)의 시대가 아니라 상극(相剋)의 세상이다. 도둑놈한테 도둑놈이라고 욕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했다가는 맞아죽는 세상이다.

상극의 이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남의 잘못을 드러내어 말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남의 잘못을 꼬집는 말이 자신을 죽이는 도끼가 되는 것이다. 자신을 죽이는 도끼를 살신지부(殺身之斧)라고 한다.

 

 

이 낙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세상의 온갖 죄와 악에 대해 눈을 감고 모르는 체 하고 살아야 한다. 공자는 뒤늦게 죽기 전에서야 지금 시대가 낙서(洛書) 상극(相剋)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자신이 일생동안 헛된 것을 가르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자는 그 사실을 혼자만 가슴에 담고 있다가 죽으려니까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알아들을 수 있는 제자만 알아듣게 하려고 순천자존역천자망(順天者存逆天者亡)이라고 은유적(隱喩的)으로 말한 다음 그 뜻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그 뜻을 비밀로 영영 덮어 두려 했던 것이다.

낙서(洛書) 그림을 보면 아무리 올바르게 풀이를 해 보려고 해도 상극의 원리 밖에 나오지 않는다. 낙서 시대는 남을 해쳐서 내 이익을 취하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 되는 세상이다. 지금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남을 해쳐서 이득을 얻으려 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한테 빼앗기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도해(河圖解) 현토본(懸吐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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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圖解 懸吐本 河圖者解先天八卦統合相生之書也 先天八卦河圖會中之義未來里程標也

 

河圖其天地之體而八卦之本乎-인저 -未有天地之前一太虛也-虛无冥漠하야 未始无有 於虛无冥漠之中中者一也-一曰道道曰中이니 无形 无眹 无終 无始 生生不息이라 是名太一이라 老子-所謂谷神不死라시니 是也-니라. 

一動而生陽於北하고 二靜而生陰於南하고 三動而生陽於東하고 四靜而生陰於西하고 五動而生陽於中하야 五方旣周陽昭而陰黯이요 陽盈而陰肭이니 是謂-參天 兩地也-이라 -又次-六成陰於北하고 -七成陽於南하고 -八成陰於東하고 -九成陽於西하고 -十成陰於中然後陽得陰하고 陰得陽하야 各有配合이라.

周而合之 則東北陰中之陽이니 少陽이요 西南陽中之陰이니 少陰이라 徑而合之 則陽位惟三이니 老陽 이요 陰位惟三이니 老陰 이라 此所以該三才 而生八卦此所以生五行이요 而運四時也-河圖也- 示此者也-이라.

繫辭曰天數五地數五 五位相得하야 而各有合하니 天數二十有五地數三十이니 凡天地之數五十有五이라 此所以成變化而行鬼神也-라 하니 此之謂也-니라. 陰陽旣具混沌乃分하니 陽氣輕淸故諸陽上陞하야 積而爲天하고 陰氣重濁故諸陰下墜하야 積而爲地이라. -盛南하고 -盛北故-南擧而左旋하고 -北擧而右仰하며 陽性 動하고 陰性.靜故天行하야 圜繞於隤然之外一日一周過하고 地勢하야 迎承乎確然之體로대 永久而不違니라.

以成相交하야 而生六子焉이니 -交東北陽動陰下하야 爲雷.爲長男 하고 -交西南陰入陽下하니 爲風 爲長女이며 -交正西陽陷陰中하야 爲月 爲中男 하고 -交正東陰麗陽中하야 爲日 爲中女이며 -交西北陽止陰上하야 爲山 爲少男 하고 -交東南陰說陽上하니 爲澤.爲少女 니라 是故-高正南 하고 -崇正北이라.

-出正東 하고 -生正西 하며 -起東北이요 -自西南 이며 -從西北이요 -聚東南 이라사 八卦之體於斯立矣로다. 爲金하고 爲土하며 爲木하고 爲水爲火하나니 五行之相於斯形矣로다 八體旣立推盪하고 相乘이라사 以生-萬物焉이라.

說卦曰天地-定位하매 山澤通氣하며 雷風相薄하며 水火-不相射라사 八卦-相錯하니 -原頭.生出之本體而河圖之所蘊也-인저 包羲氏-得之하사 察其奇 偶하시고 驗之仰 俯하사 乃畫三奇以象天하시니 而名曰乾 이요 乃畫三偶以象地하시니 而名曰坤 이며 交奇於坤而爲震..하시고 交偶於乾而爲巽..하사 以象六子之生하시고 以位於八方南 坤이요 東 坎西東北 巽西南이며 西北 兌東南對峙四隅시니 八卦之象於斯乃見矣로다.

八卦旣畫因而重之하사 以象八氣之象으로 六十四卦於斯乃見矣로다 乾坤交하야 而生六子八卦變하야 而爲六十四卦이라 六十四卦-從乾坤中變出來.

繫辭曰乾坤其易之蘊也-인저 乾坤毁則无以見易矣리라 又曰乾坤其易之門耶-인저 陰陽合德以剛柔有體以體-天地之撰이요 以通-神明之德이니라.

 

註釋=河圖五行者何謂也-不器曰 一. 六爲水之-一水者動而爲風氣雲霧雨露氷雪也-六水者靜而爲沼澤淡湖海洋也-. 七爲火之-二火者靜而爲地中之陰火也-七火者動而爲天上之陽火也-. 八爲木之-三木者動而爲樹液之血分也-八木者靜而爲木質之筋分也-. 九爲金之-四金者靜而爲地外之散在鐵鑛也-九金者動而爲地內之沈重熔金也-. 十爲土之-五土者動而爲地內核之熔解渦旋遊動泥也-十土者爲地外殼之大陸海底堅土石也-니라. 又曰衆草與禽獸蟲魚之類其受天地陰陽五行之稟一六水-三八木之間物者乎-

歲在丁亥 冬至節 於仁王草堂 不器 寫經 而謹縣吐也

 

 

낙서해(洛書解) 현토본(懸吐本)

洛書者解後天八卦分散相剋之書也 後天八卦洛書九宮圖書之義過去日程者也

此圖伏羲氏-劃卦之時所則之書시니 其數則之若如.瑞龜戴九하고 履一하며 左三右七이요 二四爲肩하고 六八爲足이니라.

 

洛書其天地之用이며 而八卦之變乎-인저 八體-旣立變轉八方하니 以運四時而成萬物焉이라. 天氣左旋하야 而降乎西北하고 地氣右旋하야 而陞乎西南이며 日隨天하야 而晅乎正南이오 月沈地하야 而潤乎正北하며 雷出地하야 而動乎正東하고 澤從天하야 而說乎正西하며 風從雷하야 而撓乎東南하고 山過地하야 而止乎東北이라.

然後-位於東하고 -位於南하며 -位於西하고 -位於北하며 -位於中이라 五行之位-於斯定矣니라 於是五行相生하야 以運四時하고 以生長收藏이라. 曰帝出乎震하고 齊乎巽하고 相見乎離하고 致役乎坤하고 說言乎兌하고 戰乎乾하고 勞乎坎이라.

成言乎艮이라 이나 其相生也-必資其相克之權이라 土克水然後에야 木乃生焉이요 金克木然後에야 火乃生焉이요 水克火然後에야 土乃生焉이요 木克土然後에야 金乃生焉이요 火克金然後에야 水乃生焉이라 是故正北水()-旣盛하면 則西南土()-하야 而克之하고 西南土-旣盛하면 則正東 東南木()-相承하야 而克之하고 兩木-旣盛하면 則西北.正西金()-必乘中央土(戊己)하야 而克之하고 兩金-旣盛하면 則正南火()-必藉東北土()하야 而克之하고 正南火-旣盛하면 則正北水()-復乘中央土(戊己)하야 而克之니라.

其數-正北.西南.正東.東南.正中.西北.正西.東北.正南이라 이요 일새 尊卑-以陳이요 一正一偏아라 生克相因하고 縱橫交錯로대 不失其長少之根이라. 曰水-相逮하며 - 不相悖하고 - 通氣然後에야 能變化하고 旣成萬物也-이라 -造化運行之變用이니 而洛書也-示此者也-니라 包羲氏-則之乃轉八卦하사 以定八方하시니 東 兌西 離南 坎하시고 으로 列於四維하시며 以象五行之運時하사 而成物八卦之用於斯乃見矣로다 -又推本天地之數하야 興蓍變化하야 以决天下之疑하고 以成天下之務니라 聖人之能事畢矣夫河圖-洛書者天地之體用也-니라.

羲文則之하사 以作易하시고 孔子贊之하사 以作翼하시니 皆聖人因其實體하사 以闡明之하시고 發揮之耳시며 非敢容一毫私意之하야 安排者也-니라.

 

(註釋) 器曰 後天之後字惟謂之過去世之歲月者也-非謂來世指稱者也-洛書之洛字則水字各字之 合一而作成字者也-是故洛書之洛字 亦非稱一個地方所在川湖之名稱者也-.

惟其取象取義乎-如山嶺之雨水 各分散流去萬方 而乃成枝流之象者也-故曰天地之初萬物蒙昧自此漸長.進化.擴散.發展之象如洛水之 各流.氾濫.擴散者也-니라 又曰洛書之數-九者亦象乎未完成之數也-.

 

參考

土克水然後에야 木乃生焉이요

金克木然後에야 火乃生焉이요

水克火然後에야 土乃生焉이요

木克土然後에야 金乃生焉이요

火克金然後에야 水乃生焉이라

 

正北水()-旣盛하면 則西南土()-하야 而克之하고

西南土-旣盛하면 則正東東南木(震巽)-相承하야 而克之하고

兩木旣盛하면則西北正西金(乾兌)-必乘中央土(戊己)하야而克之하고

兩金-旣盛하면 則正南火()-必藉東北土(艮寅木)하야 而克之하고

正南火-旣盛하면 則正北水()-復乘中央土(戊己)하야 而克之니라

 

. 坎水二 坤土………………………………………………土克水

. 坤土三 震四 巽木으로……………………………………木克土

. 四 震巽木六 七 乾兌金乘乎-五中 戊己土…………金克木

. 七 乾兌金五 中土九 離火八 艮土(寅木)…………火克金

. 離火艮土(寅木)一 坎수와 五中 戊己土………………水克火

歲在 丁亥 冬至節 不器 寫經也

 

 

물 하() 자는 물이 가운데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모여드는 것을 나티낸 글자이다. 하도(河圖)는 앞으로 다가올 이상적인 미래 세상을 나타내는 이정표가 되는 그림이다.

숫자의 6은 빈 껍질을 나타낸다. 콩깍지는 6이다. 콩깍지 속에 콩이 들어 있으면 7이다. 달걀을 먹고 남은 빈 껍질 역시 6이다. 무엇이든지 쭉정이는 6이다. 6은 빈 상자이다. 알맹이가 없는 것은 모두 6이다. 생명력이 없는 것은 다 6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6으로 되어 있는 것과 7로 되어 있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생명이 없는 것은 모두 6이고 생명력이 깃들어 있는 것은 모두 7이다.

만물은 어떤 것이든지 머리와 꼬리, 겉과 안, 앞과 뒤, 좌와 우가 있다. 전후좌우안팎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상하(上下)가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은 중심(中心) 곧 가운데가 있다. 가운데가 비어 있는 것은 모두 6이고 생명이 없는 것이다. 모든 형체가 있는 물건은 6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둘이 아닌 것 곧 불이(不二)인 것은 대체 무엇일까? 둘로 나누거나 쪼갤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형체가 없는 것은 무엇일까? 눈을 한 번 감아 보라. 눈을 감으면 온 천지가 깜깜할 것이다. 어둠에 무게가 있고 깊이가 있는가? 앞뒤가 있고 전후가 있고 좌우가 있는가? 어둠은 깊이도 없고 무게도 없으며 가장자리도 없고 중심도 없으며 겉도 없고 안도 없으며 쪼갤 수도 없고 합칠 수도 없는 것이다.

 

 

추위와 어둠은 합쳐서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이면서도 둘이 아닌 것이다. 상대성의 법칙과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것은 어둠이고 추위다. 어둠과 추위는 같은 것이어서 둘로 쪼갤 수도 합칠 수도 없다. 어둠과 추위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오고 가는 곳을 모르는 것이다. 방 안에서 전등을 끄면 순식간에 어둠이 방 안에 꽉 찬다.

그런데 어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인지 땅에서 솟아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빛은 유소유방(有所有方)이다. 빛은 반드시 오는 곳이 있고 가는 곳이 있다. 빛을 태양에서 오는 것이다. 어둠은 내쫓을 수도 없고 퍼서 담을 수도 없다. 막을 수도 보낼 수도 없으니 물질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전등을 끄면 순식간에 사방에 어둠이 가득하고 좀 지나면 차가워져서 냉기(冷氣)가 쌓인다. 어둠과 냉기는 하나인데 빗자루로 쓸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둠은 어디서 오는가? 벽에서 오는가? 땅에서 오는가? 하늘에서 오는가?

어둠은 불을 켜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데 그렇다면 대체 어디로 가는가? 땅으로 가는가? 하늘로 가는가? 벽 틈으로 기어 들어가는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어둠은 무소무방(無所無方)이다. 어둠과 추위는 둘이 아니다. 추위가 곧 어둠이고 어둠이 곧 추위다. 그런데 서로 나눌 수도 합칠 수도 없다.

어둠과 추위에 대해서 깨닫고 나서 스승님께서는 불이사(不二詞)라는 글을 쓰셨다. 어둠은 머리와 꼬리가 없다. 빛은 유소유방(有所有方)이다. 빛은 오고 가는 곳이 있으니 있는 물질이다.

그러나 어둠은 속도 없고 겉도 없다. 끝도 모르고 시작도 없다. 중심도 없고, 앞과 뒤, 좌와 우도 없다. 그래서 무극(無極)이라고 한다.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을 낳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질문은 생물학자들한테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대학(大學)>에서 모든 만물의 연원(淵源)이 무엇인지 측량할 수 없다, 곧 불측(不測)이라고 하였으나 나는 불측이 아니고 난측(難測)일 뿐이라고 주석(註釋)을 달았다.

둘이 아닌 것이 천지(天地)를 낳았으니 그렇다면 둘이 아닌 것은 어디서 났는가? <대학(大學)>에서 천지지도(天地之道)는 가일언이진야(可一言而盡也) 기위물(其爲物)이 불이(不貳)라고 하였다. 곧 천지의 도는 한 마디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으니 천지를 만든 물건은 둘이 아닌 것이라고 하였다.

 

 

不二詞

-至陰極寒者 以現象界之 二分法不可取象者也 此詞論五行中 拔聚者也

 

둘로 되어 있지 않다라는 제목의 이 노랫말은 우주가 태동하는 태초의 상태에 대한 것이다. 즉 지극한 어둠과 극한의 추위는 현상계(現象界)의 이분법적인 법칙으로는 그 상()을 취할 수가 없다. 다음의 글은 스승님께서 지은 글이다. 스승님께서 스승님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지은 논오행(論五行)’이라는 글에서 발취(拔取)한 글이다.

 

曾遊窮極詠誦之호대  내 일찍이 窮極 境界 노닐어 보고 읊기를

陰寒自在非作爲-  어둠과 추위는 저절로 생겨났거니 作爲 아니오.

生生不息無窮盡커니  쉬임없이 생겨나고 또 생겨남에 그 끝남이 없거니

莫謂終始生與滅이라  끝이네, 시작이네, 생기네, 멸하네 하고 이르지를 마라

漆黑極寒無極道-  칠흑 같은 어두움과 極寒만이 자욱한 無極道에서

凝縮渦旋胎中極이라 음한이 無限凝縮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中極胎動하거니

極則必反生太易커니 收縮 극한점엔 반드시 튕겨져 퍼져 나가서 太易 났거니

此謂陰陽乾坤根이라 이를 일러 陰陽 乾坤 태어난 그 뿌리라고 한다.

天體萬有從陰生커니 천체건 만유건 간에 모두가 陰寒으로 부터 나왔거니

造化局量不可說이라  그 조화와 국량은 가히 말로 설명할 수 없어라

無所不在凝爲道커니  凝結縮積 로 하는 그 음한(陰寒) 없는 곳이 없거니

炎裡猶棲三足烏로다  햇살의 광염 속에 오히려 三足烏가 둥지를 틀었구나.

陰聚寒凝不二物커니  음이 소용돌이쳐서 모이는 것과 추위가 엉기는 것은 두 물건이 아니니

一滴結露陰寒功이오  한 방울의 물이 맺힌 이슬도 음과 한의 공적이오,

日輪不壞凝聚力일새  저 불덩이 햇바퀴가 깨지지 않음도 凝聚하는 力量이라

是謂自然無爲法이로세 이를 일러 저절로 되어서 作爲함이 없는 法則이라고 하네.

 

吾幼年 時時破寂師問之 又問之不得不答之又答之 此詞 亦師問五行之根其答之 一部也.

 

내가 어릴 적에 스승께서 때때로 심심파적으로 삼아 물으시고 또 물으심에 답하고 또 답해 올릴 적에 이 노랫말 역시 스승께서 오행(五行)의 뿌리에 대해 질의하신 것에 대해 답해 올린 바 논오행(論五行)’ 이라는 글 중의 일부이다.

 

 

어둠의 단계를 아홉 단계 곧 구음(九陰)으로 표시할 수 있다. 달빛이 비치는 밤의 어둠을 1음이라고 하고, 그믐날 한밤중의 어둠을 2음이라고 하며, 칠흑 같은 어둠, 곧 별빛도 없는 밤의 어둠을 3음이라고 하고, 밤중에 하늘이 전혀 안 보이는 깊은 골짜기 속에 있을 때의 어둠을 4음이라고 하며, 창이 없이 온통 철통으로 된 방 안에 갇혀 있는 어둠을 5음이라고 하고, 만장(萬丈)이나 되는 깊은 동굴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어둠을 6음이라고 한다.

나머지 세 단계의 어둠은 현상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어둠이다. 구음(九陰)은 어둠의 단계를 나타내는 단위 표시다. 서양에서는 룩스라고 하여 밝은 것만을 나타내는 단위만 있지 어둠을 나타내는 단위는 만들지 않았다.

<대학(大學)>에서 천지지도(天地之道)는 불이(不貳)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 것은 공자(孔子)가 한 말이 아니다. <대학>은 공자의 가르침을 듣고 그 제자들이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글을 모아서 편집한 것이다.

그 뒤에 있는 글을 보면 천지가 이루어진 도()를 오직 한 가지 정성으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곧 성일불이야(誠一不貳也). () () 불이(不貳)는 소이성야(所以誠也)라고 하였다. 공자의 이 말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잘못된 정성은 오히려 무지(無知)를 더 키울 수 있다. 오직 정성을 들여 한 가지로 집중하면 천지의 도를 알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동문서답(東問西答)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인불언(人不言)이면 신불지(神不知)라는 말이 있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사람이 말을 하지 않으면 귀신이라고 해도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귀신 같이 안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잘못된 말이다.

귀신같이 멍청한 놈이라고 바꾸어야 한다. 귀신이라고 해도 사람이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기도(祈禱)를 하거나 축문(祝文)을 읽을 때 마음속으로 읽지 않고 반드시 큰 소리를 내서 읽어야 하는 이유는 하늘에 대고 기도를 하거나 귀신을 달랠 때에도 소리를 내서 말해야만 귀신이든지 사람이든지 알아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말을 하지 않으면 귀신도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래서 혼잣말을 잘 지껄이는 사람한테는 온갖 우환(憂患)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혼잣말을 하면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귀신이 보이지 않는 귀로 다 듣고 있는 것이다.

혼자 있으면서 혼잣말을 하면 자신의 비밀을 말하기 때문에 그 말을 귀신이 듣고 있다가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서 일러 주어 나중에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잣말을 하면 사람은 들을 수 없지만 주변에 있는 귀신들이 다 알아듣는다.

물각유주(物各有主)란 말이 있다. 물건은 각각 주인이 있다는 말이다. 또는 물건은 같은 것끼리 곧 끼리끼리 모인다는 뜻도 있다. 어둠은 어둠을 불러들여 어둠끼리 모이고 밝은 것을 밝은 것을 불러서 밝은 것끼리 모이는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큰 불행이다. 어둠 속에 있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다.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도 없고 알 수 없으며 할 수도 없다. 눈이 아무리 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둠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칠흑(漆黑) 같은 밤길을 걸을 때에는 눈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어둠은 기도(祈禱)를 해서 쫓아낼 수 없다. 몽둥이로 때려서 쫓아낼 수도 없다. 삼태기로 퍼서 담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둠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생생불식(生生不息)이라고 한다. 어둠과 추위는 없애거나 나눌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노자(老子)는 어둠을 일러서 곡신(谷神)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 자는 골짜기 곡()이다. () 자는 여덟 팔() 자 두 개 밑에 입 구()자가 있는 글자이다. 8×864 64곳의 골짜기에서 물이 한 군데로 모여드는 형상을 나타낸 글자가 골짜기 곡()이다.

64군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소용돌이쳐서 모이는 것, 모든 골짜기의 물이 한 군데로 흘러들어서 소용돌이를 이루며 모여드는 형상을 나타낸 글자가 골짜기 곡()이다. 골짜기 곡(), 소용돌이 곡()이다. 물이 사방의 골짜기에서 모여들어 소용돌이치며 모이고 응축(凝縮)하는 형상이다.

노자(老子)는 어둠을 일러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는 뜻인 곡신불사(谷神不死)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죽지 않는 유일한 물건인 어둠과 추위를 곡신(谷神)이라는 말로 나타낸 것이다.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도 음()과 한()이 응축(凝縮)하는 힘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봄철과 가을철에 꼭 같은 습도와 온도에서 이슬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봄철에는 발산(發散)하는 태양의 기운을 받기 때문에 이슬이 맺히지 않고, 가을에는 음한(陰寒)의 수축(收縮)하고 응결(凝結)하는 기운을 받으므로 이슬이 맺히게 되는 것이다.

음과 한이 엉키어 수축하는 힘이 극한(極限)에 다다르면 먼저 수소(水素)가 생겨난다. 그 다음에 산소(酸素)가 생기고 산소와 수소가 서로 마찰하면 탄소(炭素)가 생겨난다. 그 다음에 질소(窒素) 같은 것은 원소(元素)들이 생겨나서 지금 100여 가지가 넘는 원소들이 생겨났다. 수소와 산소가 합쳐져서 물이 생겨났고 물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다.

생명이 생겨나기 전에 물이 먼저 생겨났다. 그래서 자축인묘(子丑寅卯)로 순서를 정하여 물을 나타내는 자시(子時)부터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둠과 추위는 노자(老子)가 곡신불사(谷神不死)라고 한 대로 결코 죽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모든 형상은 그 정해진 수명이 있으나 어둠은 수명이 없다. 태양도 90억 년이 지나면 꺼져서 없어질 것이다. 확산(擴散)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끝이 있다. 확산하는 에너지는 그 끝이 있으나 모여드는 에너지 곧 응축(凝縮)하는 기운은 그 끝이 없는 것이다.

태풍은 가장자리로 갈수록 그 움직임이 커지지만 태풍의 핵()은 움직이지 않고 늘 고요하다. 문의 돌쩌귀는 문을 열고 닫을 때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임의 중심에 돌쩌귀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문을 열고 닫을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 역시 중심이 흔들리지 않아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가 있다. 풍파에 시달리는 배처럼 마음이 이리 저리 흔들려서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 제일 먼저 마음이 안정되어야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大學)>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知止而后有定이니 安而后能靜하며 靜而后能安하며 安而后能慮하며 慮而后能得이니라.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則近道矣리라.

古之-欲 明 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하고 欲治其國者先齊其家하고 欲齊其家者先修其身하고 欲修其身者先正其心하고 欲正其心者先誠其意하고 欲誠其意者先致其知하니 致知在格物이니라.

 

 

지지(知止) 이후(而后)에 곧 그침이 있는 이후에 안정을 얻을 수 있고- 라고 하였다. 먼저 자리를 제대로 정하고 나서야, 곧 이사를 갈 곳을 미리 정해 두어야-멈출 곳을 알아야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안정을 얻은 뒤에야 고요해질 수 있고, 고요함을 얻은 뒤에야 편안함을 얻을 수 있고, 편안함을 얻은 뒤에야 생각을 할 수 있고, 생각을 한 뒤에야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공자(孔子)는 임금 후()자를 뒤 후()자로 잘못 알고 썼다. 공자는 이 글에서 말끝마다 뒤 후() 자를 임금 후() 자로 틀리게 썼다. 그리고 지극한 지식은 격물(格物) 곧 물건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에 있다.

습기를 머금고 있는 축구공만한 부피의 공기가 어둠과 추위로 인해 응축하여 한 군데로 모이면 콩알 만한 크기의 이슬방울이 된다. 이것은 어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태양은 반대로 이슬을 말리는 것만 할 수 있다. 모여들게 하는 힘이 흩어지게 하는 힘보다 곱절이 더 세다. 수류탄을 터뜨리는 힘보다 억누르는 힘이 더 세면 수류탄이 터지지 않는다.

폭발하는 힘은 모두 열과 빛에서 나온 것이다. 수류탄이 폭발하는 힘이나 핵폭탄이 폭발하는 힘은 모두 빛과 열에서 나온다.

이글이글 불타고 있는 빛과 열의 집합체인 태양이 원자폭탄처럼 터져서 없어지지 않고 계속 수십억 년 동안 활활 타고 있는 것은 어둠과 추위가 태양 주위를 감싸고 있으면서 태양이 폭발하는 힘보다 더 큰 힘으로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이름난 물리학 박사한테 물어보았더니 태양의 안쪽에서 3초 동안에 폭발하는 에너지의 양은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3천만 개를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태양이 3초 동안에 만들어 내는 열에너지가 지구 전체에서 1년 동안 쓰는 에너지의 양보다 더 많다.

 

 

이토록 큰 폭발력을 지닌 태양이 터져서 산산조각이 나지 않고 있는 것은 음한(陰寒)이 더 큰 힘으로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둠과 추위가 거대한 힘으로 태양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달걀의 노른자위를 흰자위가 싸고 있는 것처럼 태양을 싸고 있는 것이다.

어둠과 응축의 도()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태양의 흑점(黑點)을 옛 사람들은 삼족오(三足烏)라고 하였다. 흑점의 표면 온도는 45백도쯤 된다고 한다. 태양에는 흑점이 3개가 있는데 이를 두고 옛 사람들은 발이 세 개가 달린 까마귀로 표현하였다. 삼족오(三足烏)는 응축하는 힘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응축의 힘이 극한에 이르게 되면 지구는 땅콩만한 크기로 쪼그라들게 될 것이고 태양도 야구공만한 크기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를 두고 천체물리학에서는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려면 먼저 물건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 곧 격물(格物)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둠과 추위의 성격을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지극한 지식을 얻으려면 먼저 물건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엇이든지 안정을 이루기 전에는 시작할 수 없다. 마음이 이리 저리 떠돌거나 들떠 있으면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다.

 

 

어둠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때문에 소리가 없다. 응축하는 것에는 소리가 없다. 빛은 확산하고 폭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리가 있다. 모든 소리는 확산하고 폭발하는 것 곧 양()에서 나온다. 모든 소리는 폭발하는 소리이다.

반대로 음()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음은 어머니와 같은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쫓아내지 않고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어둠과 냉기(冷氣)가 소용돌이쳐서 모일 때에 그 한 가운데 태풍의 눈이 있는 자리에 있던 것이 사람이 되었다. 빅뱅으로 대폭발이 일어나서 만물이 생겨날 때에 가장 한 가운데의 중심(中心)에 있던 것이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바로 조물주이고 만유(萬有)에서 중심이 되고 으뜸이 되는 존재이다. 우주에서 태초(太初)에 만유(萬有)가 생겨나는 그 어마어마한 소용돌이에서 가장 중심에 있던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의 몸에 우주의 모든 법칙과 원리가 들어 있다. 그래서 곤() 임금이 곤지(袞指) 곧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것을 붙잡으라고 한 것이다. 곤지(袞指)라는 말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모든 사람이 창조주이다. 태풍의 한가운데 눈이 없으면 태풍은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져 버릴 것이다. 중심이 없으면 모든 것은 허물어져서 흩어지고 만다. 모든 사람은 천지가 창조될 때 그 구심점(求心點)에 있었다. 거기 있으려고 애를 써서 있게 된 것이 아니고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연(偶然)이 필연(必然)이 되고 필연(必然)이 우연(偶然)이 되는 것이다.

1, 3, 5, 7, 9는 중심이 있다. 5가 중심이다. 1, 3, 52, 4가 후천 낙서에 있고, 선천 하도에는 7, 9, 그리고 6, 8, 10이 있다. 선천(先天)인 하도(河圖)에는 양()이 둘 밖에 없다. 이것을 보면 후천세계인 전반기에는 양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선천세계인 후반기에는 음이 주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늘은 무엇을 일러서 하늘이라고 하는 것인가? 한 치 위라도 땅 위는 모두 하늘이다. 그러므로 쥐구멍 속에도 하늘이 있는 것이다.